태권도 근 현대사의 공식적입장은 나와있는게 많고, 대학에서도 연구된 것이 많으니 저희 태권 US는 그 큰 줄기에서 Public에 나와있는 자료들과 커뮤니티에서 모은 자료들을 한곳에 모아보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격동의 시대를 겪어오신 분들과 함께 전해지는 이야기도 함께 엮어보려 합니다.
이 내용들은 기사가 아닌 “유튜브등의 비디오”와 “썰”을 토대로 만든 컨텐츠이며, 태권 US 운영팀에서 공식 혹은 비공식적으로 얻은 인터뷰 소스와 팀원의 지인을 통해서, 혹은 사석에서 들은 당시 얘기들을 같이 풀어 보려합니다.언급된 내용들이 사실과 다르다면, 수정 요청, 혹은 댓글로 수정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태권 US 운영팀]
오늘은 첫번째 이야기로 전반적인 80년도 태권도 썰로 시작을 해보려합니다.
관장님들, 사범님들께서 오늘이 있기까지 개개인의 많은 노력들이 있었던것도 사실이지만,
현대 태권도는 86 아시안게임, 88 올림픽을 통해 미디어를 통해 전세계에 태권도의 화려한 발기술이 알려지게 되고, 2000년 시드니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이 되며 오늘에 이르기 까지 경기태권도가 큰 역할을 한것이 주지의 사실입니다.
그 때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한국출신 미국 사범의 관점에서 정리해보면,
50년대 한국전쟁 직후에 필요했던 실전 무술, 60년대 월남전 파병과 관련되어 전파된 태권도와 브루스리 라는 동양 무술 영화를 통해 그가 세상을 떠난70년대초까지 (그리고 그 이후까지) 왕성하게 성장한 마샬아트라는 컨텐츠, 그 후 성룡이 바톤을 이어 받아 계속 만들어진 무술영화들, 그리고60, 70년대 영화, 혹은 그 외의 동기부여로 태권도를 시작한 많은 한국의 태권도인들이 80년대에 이르러 한국과 미국의 경기태권도의 르네상스기를 만들게 됩니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밀어차기, 찍기, 뒤차기 등의 크지만, 단일 기술 중심이었지요.
하지만, 80년대 중반을 기해 새로운 기술들이 선보이게 됩니다.
밀어차기대신 등장한 컷킥,
종전에 큰 돌려차기를 간소화해서 하나 더 붙인 나래 (더블)차기,
뒷차기 하다 돌아서 차게 된 돌개차기(턴, 나라방),
찍기를 간소화한 앞 후려 찍기
등등이 선보이며 기술이 더욱 화려해 지기 시작합니다.
이는 “스텦”이라는 개념이 소개되면서 스피드가 더해지면서 생기게 된건데, 이 시기를 감히 르네상스라고 부르는것은 종전에 큰 동작들이 가져다주는 파워에 스피트와 화려한 기술들이 태권도 경기에 공존했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거기에 전 세계가 이 경기 태권도에 빠져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첫 공식 품새대회가 1998년*에 치러졌고, 2006년에 와서 세계 품새 태권도 대회를 계최한것을 보면, 지극히 태권도 보급은 겨루기 경기 태권도와 보급과 역사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시범도 이 범주에 들어가지만, 시범은 나중에 따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태권도 한마당에서 1992년 품새대회를 하였지만 당시는 생활체육에 가까운 형태였고, 경기단체인 대한 태권도 협회에서 공인한 품새시합은 1998 용인대 총장기 인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서, 이처럼 품새경기가 나오기전 태권도 경기는 겨루기 였고, 파워와 스피트, 그리고 발로하는 화려한 기술로 세계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1988년 서울 올림픽 시범 종목으로 지정되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외교관 출신인이었던 고 김운용 총재(1931년 3월 19일 ~ 2017년 10월 3일)가 당시 모든 태권도단체(세계 태권도 연맹, 대한태권도 연맹, 국기원) 의 수장이 었었고, 세계화의 초석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그로 인해 코치, 선수들 또한 세계에 대한민국의 태권도를 세계가 보는 링위에 좋은 모습으로 내어 놓기 위해 참으로 많은 노력을 하였을 거라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80년대 태권도의 성공적 프리젠테이션은 아직도 현직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스타” 선수들을 배출하게 되고, 전 세계적으로 메니아 층을 만들게 되며, 90년데 부흥기를 위해 초석을 다지게 됩니다.
계속...
- 태권 US 운영팀 -